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는 과학과 영화가 만난 최고의 사례로 손꼽힙니다. 이 작품은 웜홀, 상대성이론, 시간왜곡 등 복잡한 물리학 개념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대중의 이해를 돕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결국 픽션입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 과학적 설정과 실제 이론의 차이를 비교해 보며, 어느 부분이 과학적으로 사실에 근거했고, 어디서부터 상상력이 개입되었는지를 명확히 구분해보고자 합니다.
상대성이론: 영화의 핵심, 현실의 이론
*인터스텔라*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인정받은 설정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에 기반한 시간지연 현상입니다. 중력이 강한 곳일수록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이론은 실제로 입증된 물리학 법칙이며, GPS 위성 시스템의 정확한 시간 측정을 위해서도 반영되고 있습니다. 영화 속 밀러 행성에서의 ‘1시간 = 지구 시간 7년’ 설정은 과장처럼 들리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행성이 블랙홀 바로 근처, 극단적인 중력장이 존재하는 위치에 있어야 하며, 이는 현실적으로 매우 위험하고 불가능에 가까운 환경입니다. 하지만 원리 자체는 과학적으로 타당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한,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웜홀을 이용해 다른 은하계로 이동하는 장면은 특수 상대성이론이 아닌 일반 상대성이론의 수학적 해석 중 하나로 간주되는 ‘웜홀 해석’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현실에서 웜홀의 존재는 아직 이론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이 개념은 아인슈타인의 필드 방정식을 통해 유도된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웜홀과 블랙홀: 개념은 맞지만, 현실은?
영화 속 웜홀은 토성 근처에 존재하며, 이를 통해 인류는 다른 은하로 이동합니다. 이 설정은 SF로서 극적인 전개를 이끄는 도구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웜홀의 존재는 아직 한 번도 관측되지 않았고,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웜홀이 실존하려면 '음의 에너지(negative energy)'라는 특이한 물질이 필요하다고 가정합니다. 이 물질은 이론적으로 존재 가능성이 제기되긴 했지만, 아직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영화의 웜홀은 과학적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실현 불가능한 SF적 상상입니다. 반면 블랙홀 묘사에서는 놀라울 만큼의 과학적 정확성을 보여줍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블랙홀 ‘가르강튀아’는 물리학자 킵 손의 자문을 받아 실제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린 이미지로, 중력렌즈 현상까지 반영된 현실적인 묘사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가스디스크가 블랙홀의 상하 방향으로 휘어져 보이는 현상은 중력이 빛의 경로를 휘게 만들기 때문에 발생하는, 물리학적으로 타당한 현상입니다.
시간왜곡과 테서랙트: 예술과 과학의 경계
영화 후반부의 하이라이트는 쿠퍼가 블랙홀 내부로 진입하면서 경험하는 ‘테서랙트’ 공간입니다. 그는 이 안에서 시간의 흐름을 3차원적 공간처럼 인식하며 과거로 메시지를 보냅니다. 이 장면은 과학적인 근거보다 철학적, 상징적인 해석에 가까운 설정입니다. 과학적으로 블랙홀의 내부, 즉 특이점(singularity)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현재의 이론으로는 중력과 양자역학이 충돌하는 지점으로, 시간과 공간이 무너지는 특이한 환경일 것이라 추정될 뿐입니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과학적 설명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연결된 서사를 전개하며, 픽션의 힘을 극대화합니다. 시간왜곡 현상 자체는 과학적으로 존재하지만, 이를 이용해 과거와 교신하거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현재의 과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쿠퍼가 중력파를 통해 과거의 딸에게 신호를 보내는 장면은 극적인 감정 전달을 위한 상징적인 장치일 뿐, 현실적인 과학적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인터스텔라*는 과학 이론을 가능한 한 정확히 반영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결국 영화는 상상력과 감정의 매체입니다. 상대성이론, 블랙홀, 시간지연 등은 이론적으로 정확하게 반영된 부분이 많지만, 웜홀을 통한 이동, 블랙홀 내부의 테서랙트 같은 요소는 픽션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영화와 현실 과학의 차이를 이해하면서 감상한다면, *인터스텔라*는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게 다가오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